재무 실전 일지 · 4편

불안의 정체는 돈이 아니라 '지도'였다

잉여는 0에 가까웠지만, 자산을 펼쳐보니 집은 생각보다 튼튼했다.

숫자를 마주하다 보니 뼈아픈 게 하나 드러났다. 매달 들어오는 월급과 나가는 지출이 거의 같았다. 남는 돈, 그러니까 자유롭게 굴릴 수 있는 잉여가 0에 가까웠다.

아, 이거였구나. 내가 "지금처럼 살면 미래가 안 그려진다"고 느낀 이유.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— 잉여가 없으니 방어선도, 빚 상환도, 투자도 능동적으로 못 늘리는 상태. 제자리걸음. 숫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.

그런데 자산을 펼쳐보니, 이야기가 완전히 뒤집혔다.

  • 비상금으로 쌓아둔 현금이 생활비 1년치 안팎이었다. 외벌이 권장(6~8개월)을 훌쩍 넘는 두둑한 방어선.
  • 연금계좌는 원금에서 40%대 불어나 활발히 굴러가고 있었다.
  • 집은 실거주 한 채, 대출은 3%대 저금리.
  • 게다가 연말 몇 달간 들어올 프로젝트 목돈까지 예약돼 있었다.

한참을 들여다보다 깨달았다. 내 불안은 '돈이 없어서'가 아니었다. '지도가 없어서'였다. 돈은 여기저기 있는데 각 칸에 이름표가 없어서 전체 그림이 안 보였던 것이다. 소득이 완전히 끊겨도 1년은 버틸 집이면서, 나는 매달 불안해하고 있었다.

이 깨달음이 하나를 더 바꿨다. 나는 그동안 "부수입이 반드시 있어야 산다"고 생각했다. 그런데 이건 위험한 프레임이었다. 불확실한 부수입에 생존을 의존시키는 거니까. 방어선이 1년치나 되는데도 말이다.

그래서 고쳐 생각했다. 부수입은 '생존용'이 아니라 '가속용'이다. 방어선이 두꺼우니, 부업은 실패해도 안 무너지는 실험으로 해도 된다. 오히려 과감하게.

한 가지 더 눈에 들어온 것. 저금리(3%대) 대출을 안고 있으면서, 현금 상당액을 낮은 금리 통장에 쥐고 있었다. 어떤 돈은 이자보다 낮은 곳에서 잠자며 오히려 새고 있었다. 돈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, 돈이 제자리에서 일을 안 하고 있는 게 문제였다.

돈이 없어서 불안한 줄 알았는데, 알고 보니 튼튼한 집에서 지도만 없었던 것. 지도를 그리고 나니, 처음으로 미래가 조금 그려지기 시작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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